모유가 아이에게 가장 이상적인 영양소라는 현재의 상식과 달리 모유보다 분유가 훨씬 더 영양가 있다고 권장되던 시절이 있었다.
객관적인 과학적 실험으로 도출된 영양소 수치가 그 가설을 뒷받침 하면서 아이를 잘 키우려는 엄마들은 너도 나도 아이들에게 분유를 사서 먹였고 하얗게 살이 오른 아이가 알러지 체질로 자라도 겉모습만으로 건강한 우량아로 생각되곤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3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새로운 과학적 실험은 모유가 분유보다 아이의 건강에 좋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고 워킹 맘들은 바쁜 직장생활속에서도 모유수유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비단 이 예뿐만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과학적 실험, 객관적 수치라는 말을 등에 업고 전날과는 다른 건강 상식들이 보급된다.
어제는 DHA 성분으로 두뇌발전에 좋다고 하던 참치가 오늘은 중금속 수치에 의해 피해야 할 음식이 된다.
오늘은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1일 1식이 내일은 골다공증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으로 등장할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이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맹신하며 복용하는 양약은 또 어떤가. 새로운 의약품이 나올 때마다 엄격한 FDA 승인을 받은 안전한 약이라며 광고하지만 이것은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수치를 의미할 뿐, 실제로 시간이 지날수록 실험실에서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부작용이 나타나 개발된 지 오래되지 않아 폐기되는 것이 신약의 운명이다.
만든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신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들은 자신의 몸으로 그 약이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실험을 하는 격이다. 물론 이 약도 과학적 실험 수치상으로는 ‘안전’이 증명되었지만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접하는 ‘과학적 실험’과 ‘과학적 수치’의 실제 모습이다. 이는 과학적 실험 자체가 양을 평가하기는 쉽지만 질을 평가하기는 어렵고 전체를 고려하는 균형 잡힌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팩트(fact)만을 기준으로 잡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결과이다.
조금이라도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과학적’이라고 불리는 정보의 허상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제 진정한 의미의 과학적 지식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과학적’이라는 말에 기대기 좋아하는 의학도, ‘과학적’이라는 말을 맹신하는 독자들도 낡은 뉴턴식 패러다임의 실험실 수치에서 벗어나 아인슈타인식 패러다임으로 대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
여기 실험실 과학이 만든 수치의 허상 아래 수없는 오해와 편견속에서도 묵묵히 우리의 곁을 지켜온 한의학으로 눈을 돌려보자.
‘비과학’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 한의학의 치료법인 침구(針灸)와 한약(韓藥)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실제 사람들의 몸으로 그 안전성이 검증되었다.
인위적으로 조건을 통제한 실험실의 반복된 실험과 한정된 인체 임상 실험으로 탄생한 신약과는 차원이 다른 안전성이다.
실험횟수가 결과의 타당성을 높인다면 수천 년의 임상결과를 통해 확립된 한의학 처방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안전한 과학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한의학의 생리, 병리가 살아있는 유기체인 인간의 전체적인 균형과 건강의 질을 기준으로 삼아 발전해 왔다면 한 가지 기준으로 양만을 측정하는 실험실 과학보다는 진정 인간에게 더 적합한 살아있는 과학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이런 의미에서 실험실 과학보다 더 안전하고 인간 친화적인 과학인 한의학을 이 책에 소개하고자 한다.
한의학은 바로 수천 년의 시간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동안 우리 몸에 가장 알맞게 확립된 생리, 병리, 진단, 치법의 완결된 체계가 오롯이 모여 있는 의학의 정수(精粹)인 것이다. 병을 죽이려다 사람도 상하는 의학이 아니라 진정 사람을 살리는 의학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이제 당신의 곁에 한의학(韓醫學)이 있음을 기억하자. 한의학에 대한 ‘비과학’이라는 근거 없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한의학의 참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은 사람을 치료하는 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한 손에 잡히는 명쾌하면서도 효과적인 한의학 치료의 세계를 이 한 권의 책에 간략 하게나마 담고자 하였다.
한의학에 입문한 초학(初學)에서부터 임상을 앞두고 있는 본과 3~4학년 학생들과 초보 한의사에 이르기까지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한의학을 제대로 맛보고 공부의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되며 임상에 적용할 때에도 지침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의학적 치료는 한의학적인 생리(生理), 병리(病理)가 녹아있는 한의학적 진단(診斷), 변증(辨證), 치법(治法)을 통해 가능하다.
따라서 이 책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1장에서는 서양의학과 구별되는 한의학의 특성과 한의학적 생리, 병리의 근간이 되는 핵심 개념을 먼저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 본론에 해당하는 2장부터 9장까지는 한의학적 치료의 실제를 다루고자 하였다.
먼저 환자를 처음 대면하면서부터 시작되는 망진(望診)에서 한의학의 상징인 맥진(脈診)에 이르기까지 한의학적 진단 방법을 살펴 본 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잡아야 하는 큰 기준과 방향에 대해 알아보고, 구체적인 다양한 병들에서 어떻게 한의학적 생리, 병리를 적용하여 치료하게 되는지 보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종결부인 10장과 11장에서는 필자가 한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한의학 공부에 대한 조언을 학생들의 본원 실습 후기와 함께 실어 후학들과 교감하고자 하였다. 덧붙이자면 유능한 의사가 되기 위해선 증상(症狀), 진단(診斷), 치법(治法)이 연결되는 완결된 의학체계를 아는 것은 기본이며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들과 치료기간에 대한 정보인 예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치료의 과정에서 환자뿐만 아니라 의사도 잠식시키는 불안과 걱정으로부터 서로를 지키고 치료가 완결될 때까지 환자를 끌고 갈 수 있다.
필자가 이 책을 통해 후학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한의학적인 생리, 병리로 병을 바라보고 치료할 수 있도록 병에 대한 한의학적인 관점을 제공하고 치료 원리인 치법(治法)에 대해 설명하는 것까지이다.
물론 이 책에서도 기본적인 처방과 예후에 대한 부분을 얼마간 다루기는 했지만 구체적 처방과 예후에 대한 보다 본격적인 공부는 직접 임상 과정의 수련을 통해서 익혀야만 하는 부분이다.(침구치료는 이미 필자의 저서인 『신천임상침법』에서 그 내용을 상세히 밝힌 바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같은 병이라도 치법이 다를 수 있고 치법이 같더라도 처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예후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좋은 의사는 예후를 최단기간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 정진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 책의 독자는 우리 몸에 친화적인 치료, 살리는 치료인 한의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한의사로서 요즘과 같은 한의학 불신 풍조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한의학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오해로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의 건강을 담당해 온 우리 몸에 친화적인 한의학이 외면당한다면 그것은 국민들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한약에 대해 알리고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한의학적 생리, 병리를 최대한 쉬운 비유로 소개하여 한의학 치료가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보여주고자 하였다.
침구 치료처럼 전문적인 설명이 있는 부분만 건너뛰면 읽기에 큰 무리가 없도록 쉽게 썼으니 한의학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한의학 치료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도 이 책을 한 장씩 읽어나가다 보면 한의학으로 사람을 치료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증상에 대해 병원에서 뾰족한 대답을 못 들어서 답답한 사람들도 이 책을 통해 시원한 해답을 얻게 되길 바란다.
이 책의 10장에서는 1급 장애인인 필자가 운명과도 같았던 한의학과 조우하고 한의사로서 걸어왔던 여정을 담았는데 그 일은 아픔과 고난의 연속이었던 과거를 돌아보아야 했기에 필자에게도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그 일을 감내했던 이유는 태어나면서부터 한 번도 스스로의 힘으로 두 발로 서 본 적이 없었던 필자의 삶이 개인 백동진을 알지 못하는 일반인에게는 다소간의 위안과 희망이 되고, 지금 한의대를 다니는 후배들에게는 의미 있는 자극과 도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이유에서 한 번도 펼쳐보인 적이 없던 필자의 삶의 여정을 책의 말미에 담았으니 열린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먼저 후배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책의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원고 정리를 도맡아 준 이선미 부원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또한 교정에 도움을 준 정병준, 황경주, 전진영, 정연규,심현창 부원장님들과 출판을 맡아주신 군자출판사 장주연사장님께도 감사드린다. 항상 필자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아내와 든든한 세 아들에게도 고마움의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도 장애인 아들의 교육에 남다른 헌신과 정성을 쏟아주신 어머니께 한없는 감사를 올리며 이 책을 어머님 영전에 바친다.
늦은 밤 해운대의 야경을 바라보며
2012년 12월 信天 白東鎭
머리말 과학적 수치의 허상을 넘어 살리는 의학으로
제 一 장 한의사는 한의학적 사고를 해야 한다
1 오래될수록 좋은 의학, 한의학
2 CT나 MRI가 없어도 명의가 될 수 있다
3 허준처럼 병명을 지어야 치법이 나온다
4 오장이 그 오장이 아니다
5 혈관과 신경을 아우르는 생기의 통로, 경락
6 한의사는 한의학적 사고를 해야 한다
7 병을 치료하는 것이 좋은 의학이다
제 二 장 한의학적 진단
- 속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안다
1 진단 - 치료에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라
2 망진(望診) - 보이는 것에 답이 있다
3 설진(舌診) - 중풍이 오기 전에 막는다
4 문진(問診) - 이것은 반드시 물어라
5 복진(腹診) - 장부가 보내는 신호
6 맥진(脈診) - 한의사를 한의사답게 하는 것
제 三 장 치료의 큰 그림을 그려라
1 허증이냐, 실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2 한의학의 두 날개 - 침구(針灸)와 한약(韓藥)
3 치료의 선후를 정하라
4 환자의 마음에 치료의 열쇠가 있다
5 한의학은 병의 원인을 없애는 투병의학이다
제 四 장 한약에 대한 오해들
1 오염 한약재와 청정 한약재 사이
2 한약의 간독성,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3 한약에 대한 또 다른 오해들
제 五 장 내 몸에 정말 소중한 보약
1 만성피로 - 이럴 때는 보약을 먹자
2 무엇을 보할 것인가 - 남녀: 정(精)과 혈(血)
3 양인(陽人)과 음인(陰人), 무엇이 다를까
4 현명한 이는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친다
제 六 장 치료의 기본
- 근골격계를 잡아라
1 신천 침법 - 침의 장점만을 모아 모아
2 발목환자를 고쳐야 환자의 마음을 얻는다
3 요통과 요부강직
4 요각통 - 수술 없이 디스크를 치료한다
5 슬관절염 - 무릎의 두 대들보를 지켜라
제 七 장 필구어본(必求於本)
- 병의 근본을 치료한다.
1 병의 근본을 자연의 이치로 치료한다
2 불면증 - 자연의 리듬을 잊어버린 밤
3 위장의 담음이 정신과 환자를 만든다
4 피부병 - 해변으로 밀려온 쓰레기
5 구안와사(口眼喎�斜) - 얼굴이 앓는 감기
제 八 장 부인과
- 나는 삼신 할배
1 불임치료 - 아이를 낳고 싶어요
2 산후풍과 산후우울증 - 똑소리 나는 산후조리
3 경전통과 경시통 - 생리통은 병이다
제 九 장 소아
- 아이는 자라느라 피곤하다
1 발열이 병의 시작이다
2 소아보약 - 허약아 건강클리닉
3 소아성장 - 투자한 만큼 키 크는 아이들
제 十 장 한의학은 나의 운명
- 사람 고치는 달인이 되기까지
1 도전 정신을 키워준 형벌
2 전쟁과 같은 한의대 적응기
3 비로소 의인(醫人)의 꿈을 꾸다
4 진정한 임상의로 거듭나다
제 十一 장 후배들과의 대화
1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2 실습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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