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위장관 기질종양(gastrointestinal stromal tumor; GIST) 환자를 위한 지
침서이다. 2001년부터 이마티닙(imatinib, Glivec®, 글리벡)이라는 새로운 약이
GIST의 치료에 등장하면서 이 병의 진단과 치료는 나날이 새로운 것이 되었고, 따라서 환자들을 위한 설명도 일정 기간을 두고 새로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2004년 2월 처음으로 GIST 환자를 위한 설명회를 갖게 되었고, 지난 2013년 4월 열 번째 모임을 가졌다. 모임에 오지 못한 서울아산병원 환자들을 비롯하여 많은 환자들이 이 모임에서 들은 내용을 필요로 함을 알게 되었고, 이를 책으로 만들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2006년과 2011년에 두 차례 책자를 발간한 바 있다. 이후 수 년이 경과하면서 GIST와 관련하여 새로운 개념들이 등장하였고 국내외에서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어, 이를 반영하여 새로이 책자를 발간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GIST는 매우 드문 종양이지만 다양한 면에서 특별한 질병이고, 현재의 우리나
라 GIST 환자도 여러 측면에서 특별한 환자들이다. 먼저 이마티닙은 암의 특정 병리기전과는 상관없이 항암효과를 목표로 천연의 동식물에서 추출된 이전의 항암제와는 달리, 특정 암의 병리기전을 알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합성된 소위 표적항암제(targeted anticancer drug)로서 최초로 성공을 거둔 약이다. 특히 이전까지 효과가 있는 항암제가 전무한 종양에서 한 가지 약제로 절반 이상의 환자에서 암의 반 이상이 감소하는 부분반응, 그리고 80% 이상의 환자에서 생존기간의 연장이라는 경이적인 효과를 나타내었다. 또한 이전의 항암제에 비해서는 매우 미미한 부작용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성공의 이유는 다행히도 GIST가 KIT 또는 PDGFRA 의 돌연변이에 의한 세포 내 신호전달체계의 활성화라는 단일한 병리기전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기전을 차단함으로 인해 높은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위암, 폐암 등보다 복잡한 발암과정을 거친 암종에 있어서도 몇 가지 중요한 병리기전을 동시에 차단한다면 GIST에서의 이마티닙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두 번째로는 이전과는 달리 새로운 약제의 개발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완전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이마티닙만으로 GIST를 완치시키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약 10~20%의 환자는 처음부터 약의 효과가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내성을 갖는 환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약 35%의 환자들은 이마티닙을 투여한 지 2년 정도 경과하면 이마티닙에 듣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한 가지 항암제를 이용한 암 치료는 필연적으로 내성의 문제에 부딪칠 수밖에 없으며, 대부분의 암종에서 여러 항암제를 같이 사용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이 환자들에서 대부분 약제가 결합하는 부위의 KIT 또는 PDGFRA 유전자에 새로운 돌연변이가 발견되고 있고, 이들을 표적으로 할 수 있는 많은 새로운 약제들이 개발 중에 있으며, 이미 화이자 사의 수니티닙 (sunitinib, Sutene®, 수텐)은 3상 임상연구를 통해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 질환을 다루는 임상의사로서 큰 자괴의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이마티닙의 등장 이후 우리나라에서 시판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즉 이 약제의 임상시험기간 동안 이에 참여하지 못한 우리나라 환자들의 일부는 서구의 환자들과는 달리 속수무책으로 유명을 달리하였을 것이다. 또한, 얼마 전까지도 많은 우리나라 환자는 외국의 환자들이 새로운 약제의 임상시험에 참여하여 효과를 보는 것을 들으면서 이마티닙 또는 수니티닙에 내성을 보이며 속수무책으로 병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항암제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임상시험에의 참여가 환자에 따라서는 사활을 건 생존싸움이 되고 있다. 새로운 항암제의 개발이 매우 빨리 진행됨에 따라 적어도 GIST의 경우 운이 좋으면 이러한 여러 약제들의 혜택을 여러 번 누릴 수 있으며, 생존기간이 연장됨에 따라 이렇게 버티다 보면 완치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된다. 결국 문제는 우리나라 환자들도 새로운 약제의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일찍부터 주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새로운 약제의 임상시험은 대부분 서구에서 이루어져 왔고, 이는 사실상 우리나라의 임상시험 수준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의 임상시험 수준은 많은 발전을 하여 왔고, 현재 많은 약제의 전 세계적인 3상 임상시험에 적극적 으로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임상의사뿐 아니라, 이러한 새로운 약제를 개
발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에서는 우리나라 환자들이 새로운 항암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본사를 설득하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수년 전 이마티닙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들에 대한 수니티닙의 동정적 사용 임상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서 재발의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 환자에 대한 수술 후 이마티닙 보조요법의 임상시험의 경우에는 노바티스 본사의 허가를 얻어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시행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1차 약제인 이마티닙과 2차 약제인 수니티닙 에 내성을 보이는 경우 우리나라 환자들도 새로 나온 약제인 레고라페닙(regorafenib,Stivarga®, 스티바가) 3상 임상시험에 참여하였고, 이 약제는 효과가 입증되어 조만간 시판 예정이다. 또한 비록 허가용 임상시험에 실패하였지만 닐로티닙의 국제적인 임상 연구에도 참여하였고,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을 통해 이마티닙과 수니티닙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 일부에서는 뚜렷한 도움을 받은 바 있다.
이 책의 내용 가운데 일부는 의사도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세한 내용
GASTROINTESTINAL 환자를 위한 위장관 기질종양 치료 지침서 STROMAL TUMOR 을 환자에게 소개하는 이유는 GIST가 드문 질환으로, 환자들이 접하는 대다수의 의사들이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 외국에서는 life raft group (
http://www.liferaftgroup.org)이라는 GIST 환자들의 모임이 결성되어 모든 GIST 치료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들의 임상시험 진행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다행히 인터넷상에서 GIST 환자모임(
http://cafe.daum.net/GIST)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향후 이 모임이 외국만큼 GIST 환자들의 치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실제 환자 개개인의 치료 결정에 있어서는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의견이 가장 존중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개개 환자의 상황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세미나나 이 책자에서 제시한 경우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4월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강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