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와 항암제는 모두 화학요법(chemotherapy)으로 불린다. 의대생이던 때를 생각해 보면, 많은 공부거리 중 항생제와 항암제를 외우고 공부하는 일이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비슷한 이름의 것들을 계열을 나누어 가며 성분명, 작용기전, 적용범위 등을 외우는 것은 그 자체로도 따분하고 어려웠고, 막상 시험을 보고 나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어 시험을 위한 공부로만 여기기도 했다. 그런데 일부 임상 의사만 처방하는 항암제와는 달리 항생제는 대부분 임상의사가 처방해야 하는 약물이다. 그래서 필자처럼 감염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뿐만 아니라 임상을 하는 의사라면 누구나 항생제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처방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항생제를 잘 처방하는 것은 감염내과 전문의인 필자도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의료는 ‘예술’이라고 하지 않던가! 같은 감염내과 전문의 내에서도 같은 감염질환에 대해서도 선호하는 항생제는 다를 수 있으며, 가치관과 판단 기준에 따라 어떤 것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대부분 전문가가 동의할 수 있는 더 나은 항생제의 선택, 대부분 전문가가 판단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항생제 사용의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임상에서 항생제 사용과 관련하여 적절하지 않은 선택을 최대한 배제하고 많은 전문가가 동의할 수 있는 더 나은 선택을 돕기 위해 쓰였다.
다만, 항생제의 선택을 위한 모든 내용을 세세히 다루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독자가 어떤 상황에서 진료하는지, 수련의인지, 전문의인지, 어떤 과목을 전공하였는지에 따라서도 항생제와 관련하여 필요로 하는 내용과 이해의 폭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감염내과 의사로 항생제에 대한 강의를 여러 곳에서 하지만, 막상 책을 처음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는 막막함이 있었다. 이미 항생제와 관련된 많은 책이 있는데, 이 책을 또 쓰는 것이 도움이 될지, 누구를 대상으로 어디까지 내용을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어려운 항생제를 일반의가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역할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내 일반의(general physician) 또는 전공의가 임상에서 항생제를 처방할 때 고려해야 할 원칙과 실제 적용 방법에 대해 가능하면 알기 쉽게 기술하는 것을 이 책의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일반의나 전공의의 입장에서 항생제 처방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 아닌 것은 가급적 생략하였고, 실제 임상에서 처방 시 중요한 부분은 강조하여 기술하였다.
이 책에서는 항생제와 관련된 여러 교과서, 진료지침, 문헌 등을 참고하였다. 대한감염학회 항생제의 길잡이 4판, 대한감염학회 및 대한항균요법학회의 진료지침, Sanford guide는 가장 대표적으로 참고 및 인용한 자료이다. 기타 여러 참고문헌은 책의 끝에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이것들은 항생제의 처방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감염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위해 공부하기 매우 좋은 자료들이니 꼭 함께 찾아보며 공부해 볼 것을 권고한다.
이 책이 모든 임상의에게 완전하게 만족스러운 책은 아니겠지만, 모쪼록 많은 분이 이 책을 통해 항생제 사용의 기본 원칙을 이해하고 더 나은 진료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9년 2월
최 원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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